[소리로 떠나는 여행] 그곳의 바람, 물소리, 그리고 사람들

2025. 4. 23. 20:49카테고리 없음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소리’를 의식하며 살고 있을까요?
차창 밖의 빗소리, 발밑의 자갈 소리, 낯선 언어로 속삭이는 사람들의 대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자연의 숨결.
이번 여행은 특별히 ‘귀’에 집중해보았습니다. 보통은 눈으로 풍경을 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을 보지만, 이번엔 오직 소리만으로 낯선 나라를 기억해보려 합니다.

[소리로 떠나는 여행] 그곳의 바람, 물소리, 그리고 사람들
[소리로 떠나는 여행] 그곳의 바람, 물소리, 그리고 사람들

🌬 1.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 일본 아오모리의 풍경


일본 혼슈 최북단의 도시, 아오모리. 이곳은 북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늘 존재감을 드러내는 곳이에요.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바람 소리였습니다.
절대 조용하지 않은데, 시끄럽지도 않은 그 소리. 고요함 속에 섞여 있는 바람의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처럼 느껴졌죠.

그리고 그 바람이 스쳐간 스기나무 숲,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나뭇잎들의 파도 같은 흔들림. 마치 자연이 직접 연주하는 악기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전통 마을에 위치한 작은 신사에서 들었던 풍경(風鈴, 후우린)의 맑은 소리.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음색은, 매 순간 다른 감정을 전달해줬어요.
한참을 멍하니 듣고 있다 보니, 마치 그 소리에 내 호흡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달까요?

소리에도 온도가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순간입니다.
차가운 바람, 따뜻한 음색. 그리고 그 사이에 머문 나.

💧 2. 물소리로 기억하는 여행 – 아이슬란드의 폭포와 온천


아이슬란드는 그야말로 ‘물의 나라’입니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 들판을 가르는 개울,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까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에요.

스코가포스(폭포) 앞에 섰을 때, 그 거대한 물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굉음은 압도적인 자연의 에너지 그 자체였어요.
그 소리를 녹음하면서 느낀 건, 단순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지구가 심호흡을 하는 소리 같았다는 것.

또 하나, 특별했던 경험은 작은 마을의 천연 온천탕에서였어요.
몸을 담그고 눈을 감은 채, 온천탕 주변의 졸졸 흐르는 물길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이슬 소리까지…
물의 다양한 상태에 따라 만들어지는 소리들이 정말 섬세하게 다가왔어요.

현지인의 추천으로 방문한 시골 마을의 사우나에서는, 사우나 바깥에 설치된 작은 통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전통 아이슬란드 민요를 함께 들었죠.
그 민요는 낮은 목소리로 시작되어 마치 바람과 물이 뒤섞이는 듯한 느낌을 줬고, 순간 나는 ‘소리로 감정이 옮겨지는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 3. 사람의 소리, 그리고 마음의 소리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현지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말을 걸 때의 억양, 웃을 때의 떨림, 인사할 때의 리듬…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문화이자 소리의 풍경이었어요.

몽골의 게르촌에서는 할머니가 들려준 전통 허미(Throat Singing) 소리에 매료되었어요.
한 사람이 내는 이중음, 마치 저 멀리 초원의 바람과 말을 타는 발굽 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환청을 경험했습니다.

또, 발칸반도의 작은 마을에서는 정오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와 함께, 매일같이 모여 수다 떠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까지 그 마을의 ‘일상 사운드트랙’이 되었죠.
그곳은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소리로 가득 찬 마을이었어요.

그리고 문득,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어폰을 뺐을 때, 내 안에서 울리는 고요함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를 따라 떠났지만, 결국 내 안의 소리를 듣는 여행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죠.

🎧 마무리하며 – 소리는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소리는 눈보다 오래 남습니다.
사진은 풍경을 남기지만, 소리는 그곳의 온도, 감정, 공기, 순간의 감촉까지도 함께 담고 있으니까요.

다음 여행에서는 사진보다 먼저, 소리를 기억해보세요.
눈을 감고, 바람을 듣고, 물을 느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로 품어보세요.
세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고, 그건 때로 가장 진한 여행의 흔적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