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로 듣는 지구 한 바퀴: 전통 악기와 자연의 소리들

2025. 4. 24. 21:53카테고리 없음


여행을 하면 가장 먼저 눈에 담는 건 풍경, 손에 남는 건 기념품, 입에 기억되는 건 음식이다.
그렇다면 귀에는 무엇이 남을까?

🎧 귀로 듣는 지구 한 바퀴: 전통 악기와 자연의 소리들
🎧 귀로 듣는 지구 한 바퀴: 전통 악기와 자연의 소리들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통 악기를 직접 듣고, 자연의 소리를 귀에 담아보는 여행은 그 나라의 ‘진짜 얼굴’을 듣는 경험이었다.
오늘은 눈보다 귀가 먼저 반응했던 세 가지 특별한 ‘소리의 여정’을 공유해본다.

1.바람을 연주하는 악기 – 페루의 '판플루트'


페루의 쿠스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잔잔하면서도 신비로운 멜로디가 들려온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토속 의상을 입은 연주자가 작은 대나무 관들을 한데 묶어 입으로 불고 있다. 이 악기의 이름은 '판플루트(Pan flute)',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악기다.

처음 들었을 때, 그 소리는 마치 바람이 직접 노래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악기는 자연 속 바람의 흐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현지인은 “이 악기의 소리는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자, 바람을 통해 신과 대화하던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며 이어폰 대신 판플루트 연주를 들었을 때, 산과 내 숨결, 그리고 소리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판플루트는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그 울림은 깊다.
밤에 숙소 창문을 열어두고 들려오는 거리의 판플루트 소리는, 마치 별들과 바람이 대화하는 사운드트랙처럼 들렸다.
아직도 그 소리만 들으면 쿠스코의 공기 냄새와 차가운 산바람이 함께 떠오른다.

2.물이 만드는 리듬 – 베트남의 '다른 북'과 강의 소리


베트남 중부 후에(Huế) 지방에서는 독특한 리듬을 가진 전통 북, ‘Trong’을 만날 수 있다.
이 북은 다른 동남아 국가의 북보다 훨씬 부드럽고, 물의 리듬과 흡사한 울림을 지닌다.
재밌는 건, 이 지역의 북소리는 강물 소리와 닮아 있다는 것.

후에에는 ‘향강(Perfume River)’이라는 유명한 강이 흐르는데, 이 강 주변에서 열리는 전통 연주 공연은 특별한 감성을 준다.
북소리는 일정하지 않고, 마치 물결이 부딪혔다 사라지는 소리처럼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이 함께 노를 젓고, 그 위에 북소리가 흐르면 마치 ‘강 전체가 악기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베트남의 전통 북은 단순한 타악기가 아니라 자연과 삶을 잇는 연결고리였다.
현지의 악사들은 공연 도중 강가의 돌을 두드리거나, 바가지로 물을 튕겨 소리를 섞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악기와 자연이 낸 소리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파트너라는 걸.

3.침묵 위에 울리는 소리 – 아이슬란드의 자연 악기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곧 거대한 악기다.
여기선 사람이 연주하지 않아도 바람, 물, 빙하, 화산이 음악을 만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소리는 빙하 속에서 들었던 ‘얼음의 깨짐 소리’였다.
크레바스를 지나던 중, 발밑에서 미세하게 ‘뚝, 툭’ 하는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건 어떤 전자음보다도 날카롭고 정교한 리듬이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남쪽 해변에서 들은 ‘검은 모래사장의 파도소리’.
일반적인 해변과는 달리, 검은 모래와 조약돌 위로 부서지는 파도는 깊고 낮은 저음을 만든다.
마치 베이스 기타가 속삭이듯 반복적으로 울리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눈을 감고 몇 분 동안 그 소리만 듣고 있으면, 마치 ‘소리 속 명상’이 저절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현지 가이드의 말이 인상 깊었다.
“아이슬란드에선 인간이 연주하지 않아도, 자연이 매일매일 연주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어느새 바람 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모두 한 곡의 연주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세상은 귀로 더 넓어진다
전통 악기와 자연의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이 여행을 남기는 감각이다.
사진이나 영상보다 훨씬 오래 기억 속에 남고, 그 나라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힌트를 준다.

이제는 여행을 준비할 때,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혹시 다음 여행에서는, 오디오 레코더 하나를 챙겨보는 건 어떨까?
그곳의 바람, 물, 그리고 사람들의 음색을 담아오는 여행,
그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귀의 기억’이 되어줄 테니까.